일기
20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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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25. 10. 24. 23:45
유자나무에 유자가 열리고 귤나무에는 귤이 열리는 이 지순(至純)한 길은 바다로 기울었다.
길에는 자갈이 빛났다. 건조한 가을길에 가뿐한 나의 신발(겨우 무거운 젊음의 젖은 구두를 벗은……) 길은 바다로 기울고 발바닥에 느껴지는 이 신비스러운 경사감(傾斜感).
겨우 시야(視野)가 열리는 남색(藍色), 심오한, 잔잔한 세계. 하늘과 맞닿을 즈음에 이 신비스러운 수평(水平)의 거리감(距離感).
유자나무에 유자가 열리고 귤나무에는 귤이 열리는 이 당연한 길은 바다로 기울고, 가뿐한 나의 신발.
나의 뒤통수에는 해가 저물고. 설레는 구름과 바람. 저녁 햇살 속에 자갈이 빛나는 길은 바다로 기울고, 나의 발바닥에 이 신비스러운 경사감. 오오 기우는 세계여.
- 박목월, 「경사」
요즘 이 작품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너무 내 상황과 닮았다
수능은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는데,
사실 하루가 지나니까 수능이 다가오는 건 너무나도 지순한 일이다
부정하고 저항하는 것이 아닌, 화자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받아들이고
길을 따라 수능 당일로 나아가는 것
삶을 정리한다는 느낌으로 하루하루 마무리해가는 공부를 하자
예전 동틀녘을 보다가 내가 요즘 하는 생각과 너무 닮은 문구가 있어 1011 동틀녘으로 오늘 일기를 마무리한다.
긴장을 가지되, 조급해하지 말고,
여유를 가지되, 나태해지지 말자.